기에트시바우트의 성모
기에트시바우트, 폴란드 바르미아
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으로 가톨릭과 폴란드어가 억압받던 프로이센 땅에서, 성모가 두 소녀에게 석 달 동안 폴란드어로 말했습니다. 폴란드에서 교회가 공식 승인한 유일한 발현입니다.
- 기간
- 1877년 6월 27일~9월 16일
- 목격자
- 유스티나 샤프린스카 (13세), 바르바라 사무워프스카 (12세)
- 발현 횟수
- 160여 회
- 칭호
- 기에트시바우트의 성모
- 축일
- 9월 8일
- 교회의 판단
- 1977년 9월 2일 바르미아 교구장 승인, 교황청 동의
시대 배경
당시 이 지역은 프로이센 영토였습니다. 비스마르크는 가톨릭 교회를 억누르는 문화투쟁을 벌였고, 학교와 관청에서 폴란드어 사용을 막았습니다.
무슨 일이 있었나
- 6월 27일첫영성체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던 유스티나가 성당 앞 단풍나무 위 빛 속에 앉은 부인을 보았습니다.
- 6월 28일바르바라도 함께 보았습니다. 부인은 자신을 ‘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’라고 밝혔습니다.
- 여름 내내매일 묵주기도 시간에 나타났고, 순례자가 하루 수만 명씩 몰렸습니다.
- 9월 8일성모는 근처 샘물을 축복했습니다.
- 9월 16일마지막 발현이 있었습니다.
전해진 말씀6
표징과 기적
성모가 축복한 샘은 지금도 순례자들이 물을 떠 가는 곳입니다. 폴란드어로 전해진 말씀은 억압받던 폴란드인들에게 민족적 위로가 되었습니다.
교회의 판단
- 1877년당시 교구장이 조사단을 보냈지만 공식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.
- 1970년성당이 준대성전으로 지정되었습니다.
- 1977년 9월 2일발현 100주년에 유제프 드자가 주교가 공식 승인했습니다.
오늘의 성지
바르바라는 애덕의 딸회 수녀가 되어 과테말라에서 선교하다 1950년 세상을 떠났고, 시복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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